현재 대법원 판례의 주류는, “보험모집인은 특정 보험자를 위하여 보험계약의 체결을 중개하는 자일 뿐 보험자를 대리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할 권한이 없고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보험자에 대하여 하는 고지나 통지를 수령할 권한도 없다.”는 입장(대법원 1979. 10. 30. 선고 79다1234 판결, 1998. 11. 27. 선고 98다32564 판결, 대법원 2006. 6. 30. 선고 2006다19672,19689 판결 등 참조).
반면, 보험계약자 내지 보험소비자는 보험설계사에게 보험자와 같은 정도의 권한이 있는 것으로 신뢰하고, 보험설계사에게 일정한 사항의 고지·통지 등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법원의 주류 판례가 인식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임.
어느 쪽 입장이 타당할까?
보험설계사란? 먼저 보험설계사의 정의에서부터 살펴보자.
보험설계사는 「‘보험자(보험회사)를 위하여’ 보험계약의 체결을 ‘중개’하는 자」이다. 종래 보험업법에서 규정하는 보험설계사에 관한 정의다.
여기서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보험설계사의 지위와 권한이 달라진다.
즉 보험설계사에 대하여 ‘보험회사를 위하여’ 활동하는 자임을 강조하면 보험모집과 관련한 여러 권한(고지수령권, 보험료수령권, 계약체결권)을 인정할 여지가 높겠고, ‘중개'를 강조하면 중립적인 지위에서 어느 한쪽을 위한 존재라고 볼 수 없을 것이므로 이러한 권한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사정을 보면, 보험설계사는 단지 보험계약의 체결을 단순히 ‘중개’하는 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보험자의 대리인 내지 피용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보험자를 위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① 1977년 보험업법 개정을 통하여 보험설계사 제도를 도입하면서, 보험설계사는 ‘보험사업자를 위하여’ 존재하는 자임을 정의규정에서 못 박았다.
② 보험업법은 1사 전속제를 규정함으로써(제85조) 보험설계사는 특정 보험회사를 위하여 보험을 모집하도록 강제하였다.
③ 상법상 약관의 명시・설명의무는 보험자가 지는데(제638조의3), 이를 실제로 이행하는 것은 보험자가 아니라 보험설계사이다.
④ 보험설계사가 보험을 모집함에 있어서 보험계약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보험자가 손해배상책임을 지는데(보험업법 제102조 제1항), 이는 사용자책임의 일종이라는 것이 대법원 판례이다(대법원 1994. 11. 22. 선고 94다19617 판결 등 참조). 이는 보험설계사를 보험자의 피용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⑤ 보험설계사에게 보험료 수령권 있을까?
옛날부터 대법원은 보험설계사에게 1회 보험료 수령권을 인정해 주었다. 인정 근거는? 보험설계사가 중개인에 불과하다 하여도 오늘날의 보험업계의 실정에 비추어 제1회 보험료의 수령권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단다(대법원 1989. 11. 28. 선고 88다카33367 판결). 논리가 일관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중개인에 불과하다면 보험료 수령권도 없어야 맞는데…. 그럼 고지수령권은 보험업계의 실정에 비추어 어찌 인정 안 될까? 참고로, 보험설계사의 보험료 수령권은 2014. 3. 11. 상법 개정을 통해 입법화 되었다(상법 제646조의2 제3항).
⑥ 보험자와 보험설계사의 계약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보험설계사는 원칙적으로 보험회사에 종속되어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는 아니라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대법원 2000. 1. 28. 선고 98두9219 판결). 하지만 그렇다고 근로자성이 전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보험자와 보험설계사의 관계에 관하여, 대법원 판결이나 최근 하급심 판결은 민법상 위임계약과 고용계약의 특성이 공존하는 무명의 혼합계약이라고 볼 수 있고 이 중 위임계약에 더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는 보험설계사는 보험자의 피용자 내지 근로자로서의 성질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⑦ 보험설계사가 설명한 내용에 따라 보험계약 체결이 인정된 사례 존재
심지어 대법원 판례 중에는 보험대리점 내지 보험외판원이 보험계약자에게 보통보험약관과 다른 내용으로 보험계약을 설명하고 이에 따라 보험계약이 체결된 경우 그 때 설명된 내용이 보험계약의 내용이 되고 그와 배치되는 약관의 적용은 배제된다는 취지의 판례도 있는데, 이에 따르면 결국 보험외판원(보험설계사)에게 사실상 계약체결권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결론]
위와 같이 보험설계사는 대법원 판결처럼 단순히 보험계약의 체결을 ‘중개’하는 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험자를 위하여 활동하는 자이고, 보험자의 대리인 내지 피용자처럼 활동하는 자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지위와 권한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하면 상대방(보험계약자)은 문제 발생 시 피해를 입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보험자만을 보호하는 것이어서 정의롭지도 못하고, 형평에도 반한다는 생각!
‘이익이 있는 곳에 위험도 있다’!!
보험자가 보험설계사를 통하여 이익을 얻고 있으면 그에 따른 위험도 부담하는 것이 맞을진대, 위험을 회피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
보험설계사는 ‘중개’하는 사람에 불과하므로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강변하거나 책임을 회피하지는 말자는 것이 결론.
기존 대법원 판결이 지나치게 보험자의 이익만을 보호하는 것이어서 변경될 필요가 매우 큰 쟁점인데, 판결이 변경될 수 없다면 상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이를 바로 잡아야 마땅하다는 생각.